바다가 되었다

2023. 3. 5. 02:40

 삭막하고 가팔랐던 이십 일세기를 넘어 개막할 이십이세기로 넘어가는 사이에 설립된 북해는 첨단 도시. 고층 빌딩 빽빽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곳곳을 돌아다니는 AI 로봇. 인간됨이라고는 절멸된 결벽적인 도시. 북해는 황무지 개간 프로젝트로 인하여 전 세계가 힘을 모아 개간한 곳이다. 세상에 없는 바다를 굳이 굳이 찾아내어 모래를 붓고 돌을 붓고 시멘트를 부어 땅을 만들고 평평하게 만들고 단단하게 굳혀 인간 살게 만들고 식량을 공급할만한 길을 만들고 기후를 안정되게 유리돔을 만드니, 모든 것이 인공적일 정도로 완벽했다. 공기 한 줌조차 완벽한 이곳에 앞다투어 사람들은 입주하고 들어와 살았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석 달…. 비가 내리지 않았다. 물이 없으니 굶어 죽고 말라 죽고 피도 액체라고 제 피를 내어 갈증을 해소하고 남의 피를 사고 팔고. 이 푸른 지구에.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성을 사 분의 일쯤 잃어갈 어느 때 북해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니 신의 땅을 감히 건드렸으니 바다에 지성체를 한 달에 한 번 바치거라 네 것들이 침범한 나의 땅 마땅한 대가를 주어라 바다는 건들지 말아라 무시하기도 하루 이틀 누군가 시험 삼아 바다에서 인간 하나를 밀었더니 온 지구에 비가 내리고 한 명의 희생으로 모두가 환희에 차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세상을 돌며 인간을 바치자! 달에 한 번씩은 북해에 인간을 바치자! 하였다.

 

첨단 도시 한가운데 텅 빈 비포장 공터 가운데 구멍이 뚫려 바다 용오름이 달에 한 번씩 오르면 그 사이로 비명을 지르는 절망하는 두려워하는 끔찍해하는 사위어가는 인간을 던져 넣었다. 그러면 그제야 온 지구에 비가 내렸다. 그 주변을 감싼 것은 인간 무리. 북해의 주민들이다. 다들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허벅지 중간에 붙이고는 두를 땅끝으로 늘어트렸다. 다섯살 난 애조차 칭얼거림 없이 가만히 생명 없는 생물처럼 공터의 중심을 응시하였다. 누구라도 소리 내는 자는 같이 용오름 속으로 들어가리오 암묵적인 법칙은 갓난애조차 아는 것이다. 생존은 인간의 본능이오 인간은 곧 생존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족이 동족을 무참히 짓밟고 바치는 것이 인간의 법칙이다. 인간은 강자 생존의 법칙을 따라 몇천 년을 거슬러 살아왔다. 인간은 다시 고대로 돌아가서 현대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잔인무도한 의식이 마치 거룩한 의식인 마냥 모두가 머리를 세 번씩 땅에 내려찍고 그 주위를 가장 오래 산 노인이 돌고 노인은 울며불며 가기 싫다고 이 도시 유일하게 소리를 밝히는 어린 여아를 깡마른 손으로 끌고 간다. 머리를 찧는 사람 아무도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끊임없이 머리를 땅에 둥둥 두드릴 뿐이다. 아이의 연약한 살결이 까슬한 흙에 쓸려 짓물러도 물러 터져도 그 누구도 가련히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가까이 갈수록 용오름은 진정되고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드넓은 쪽빛 푸르른 바다가 모두의 눈에 담길 때, 바다가 요동친다. 잔잔히 일렁이던 파도가 순식간에 몸집 키우더니 아이를 잡아먹는다. 발에서부터 무릎, 대퇴골, 갈빗대, 경추 뼈 일일이 어루만져가며 여아를 휩쓸어간다. 여아가 언니, 언니 하고 가녀린 목소리로 애달프게 외치는 것은 물거품과 함께 흩어졌다.

 

바다가 되었다

 

주영이 언니, 언니하고 애달픈 목소리로 외치던 목소리는 귓가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정을 주고 키운 아이였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피를 나눈 가족이었다. 피를 나누었다는 말은 다정한 말이었다. 가히 온 지구가 갈증이나 모두가 죽어가고 있을 때 남의 피로 목을 축이게 한 대상은 피를 나눈 대상이었다. 제영은 피를 나눈 상대만을 챙기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키워온 조직의 모두가 말라 비틀어 죽을 때, 주영은 제영이 유일하게 살린, 조직원들의 피를 먹여 키운 단일한 가족이었다. 주영은 그리하여 지구에서 갈증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태어날 적부터 주영은 남달랐다. 고 반짝이는 눈으로 제영을 바라보며 겁도 없이 제영의 손을 움켜잡았다. 남들이 피 냄새난다며 도피하는 제영의 손을 늑대가 토끼 대가리 잡아채듯 콱 움켜쥘 때, 제영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조직에서 천천히 손을 떼고 어린 애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새로운 세상인 북해로 왔다. 북해에 오자마자,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제영은 조직원들을 불러 모두가 물에 허덕이는 세상에 주영만은 갈증에 허덕이지 않게 하나하나 조직원들의 피와 눈물을 먹여가며 아이를 키웠다. 그런 주영이 제물로 선택된 것은 그저께의 일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도피해도, 물 조각은 끝없이 따라왔다. 제영과 주영이 오가는 곳이면 축축해져서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끝에 아이를 뺏기고, 제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두 팔로 안을 수도 아이의 두 손을 잡을 수도 아이의 두 발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수도 없었다. 제영은, 생전 처음 무력감을 맛본다. 아이를 뺏기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하여 제영은 그날부터 바다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북해 가장 끝에 있는 용이 산다는 바다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그곳의 모래는 검었다. 제영은 검은 모래사장 위에 앉아 몇 시간이고 지평선 너머를 그저 바라보았다. 뱃고동 소리, 급한 어부들의 말소리, 철거물 스치는 소리, 등대 울음소리 그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유난히도 들리는 것은 그저 자연의 소리. 인공적인 것 하나 섞이지 않은 철썩철썩 파도 소리-. 갈매기조차 없는 이곳은 신이 산다는 곳. 북해의 가장 끝이었다.

 

첫날, 북해의 끝에서 제영은 주영의 행방을 걱정했다. 그 어린 애는 유난히 물을 무서워했다. 물에 닿는 것조차 진저리쳐서 목욕을 하면 제영과 한창 실랑이 끝에 하곤 했다. 제영은 그것이 귀엽고도 웃겼다. 주영은 이제 평생을 물에서 헤매야 한다. 어쩌면 용의 뱃속에서, 그도 아니면 깊고 깊은 북해에서. 퉁퉁 불어 물고기가 파먹고 따개비가 서식하는 주영의 몸을 상상하였다. 어쩐지 존재하지도 않는 아가미로 숨을 쉬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주영의 행방을 걱정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집으로 향하는 길. 제영의 걸음은 비틀비틀 제대로 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갈증 나는 이십 일세기 사회 물이 최고의 가치가 된 이 메마른 사회 누구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침내 도착한 집에 가 요기를 했다. 퍽퍽해진 슈크림 빵이 있었다. 주영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제영은 대충 입에 욱여넣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슈크림 빵은 달았다. 너무 달았다. 메마른 북해의 바람만이 이 아릴 정도의 단맛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영은 날이 밝자마자 북해의 끝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둘째 날, 셋째 날…. 그리하여 일곱째 날. 제영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북해의 신인 용대신 이름만 남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성경이 몇 년 전 금서가 된 이곳에서 어떻게 믿는지 어떻게 섬기는지 알려지지도 않은 신을 기도한다. 제영은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믿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지할 곳이 신밖에 없었다. 인간은 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 제영이 최근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왜 굳이 하나님이냐라면은 아는 신이 하나님뿐이었다. 외로운 갈대만이 부슬부슬 소리 내며 바닷바람 흙모래 흩날리는 곳에서 무릎도 꿇어보고 가만히 앉아 치성도 드렸다. 어느새 새벽달도 고개 감추고 파도 소리도 잠든 새벽에, 주영이 생각이 났다. 달덩어리같이 웃는 얼굴, 까만 밤에 샛별이 수놓아진 그 휘어지는 눈동자, 사랑하는…. 고개를 모래사장에 묻고 세게 울었다. 어느새, 그 주위로 바다가 요동친다.

 

파도 소리 물방울 포말 하얀 물거품 바다 그 모든 것들이 갈라지고 그 새로, 쪽빛보다 파란 물보라 사이로 남자가 하나 걸어 나온다. 남자는 살짝 마른 체형으로 어떠한 감정도 띠고 있지 않은 얼굴. 인간답지 않은 것이 꼭 무색이었다. 두 가지 색의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엉켜있고 마침내 눈을 뜨자 그곳에는 색이 다른 두 눈이. 꼭 이가 저주받은 북해에서 탄생한 새로운 신인지 구원자인지. 어쩌면, 주영을 다시 살려낼. 남자는 물보라에서 걸어 나오더니, 아무 말 않았고 제영 역시 아무 말 않았다. 시선이 공중에서 소란스럽게 얽혔지만, 머릿속은 각자의 말들로 시끄러웠지만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남자는 몇 번 눈짓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제영은 해가 지자, 발걸음을 옮겼다. 북해의 끝에서 다시 도시로 향하는 초입에서 문득 고개를 돌려보자, 남자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발을 질질 끄는 중에 미쳤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달과 해 구분 않고 제영은 바다에 있었다. 아무도 북해의 끝에 진입하는 이는 없었고 남자는 제영이 있을 때면 항상 그곳에 있었다. 어느새 조심스러운 손길로 등을 한 번 쓸어다 주고, 해가 한 번 더 뜨자 조는 것에 맞춰 어깨를 내주었다. 그다음 날 다음다음 날은 같았다. 남자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어쩌면 말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아서 남자의 정체도 모르면서 제영은 바다에 머물렀다. 나날이 메말라가며, 물을 마시기 위해 북해의 육지로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다에 머물렀다. 십 사 일째 되는 날, 말을 건넸다.

 

“안녕.”

 

침묵. 남자는 그저 조금 더 커진 눈으로, 저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 놀랐다는 듯이, 말을 걸지 몰랐다는 듯이. 남자는, 입을 뻐끔거렸다. 소리가 나왔다. 맑은 목소리였다.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하다.

 

“혹시 너는 신이야?”

“⋯아, 아니.”

 

오랫동안 내뱉지 않은 탓인지 갈라진 목소리가 사위어가듯 나왔다. 뭐야, 재미없게. 제영은 픽 웃으며 무릎을 가지런히 모았다.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신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갈라진 바다 사이에서 나온 것만은 진실이었다. 정 안되면 헛것 치부하기로 했다. 텁텁한 바닷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짠 내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파도가 발 끝까지 밀려와 발끝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부드럽게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파도에 입꼬리만 올려 웃음 짓자 끝이 살짝 갈라진 어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너는?”

“이제영.”

 

“그럼 너는?

“      ”

 

이름이 없어? 끄덕끄덕. 제영은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꼭, 달덩어리 같은 얼굴이, 미묘하게 웃음 짓는 것 같은 얼굴이. 그리워하는,

 

“그러면 주영이라고 해도 돼?”

 

이번에는 달랐다. 끄덕이는 것만 할 줄 알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주영의 이름을 주는 것은 과한 선택이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산 사람에게 주는 것도, 소중한 이의 이름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는 것도. 제영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헤일로. 내뱉었다. 헤일로가 좋겠어. 남자는 다시 고개를 상하로 움직였다. 제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행동이 좋았다. 다시 조용해진 바다, 파도 소리가 밀려오고 치렁치렁하는 가운데…. 마그네타.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 남자는 긴 이름을 내뱉고는 헤일로, 하며 미소 지었다. 새로운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음에 든 듯이 입에 담았다. 헤일로, 헤일로. 바다 소리에도 어떤 이름은 휩쓸려 가지 않았다. 흩어져도 갈라져도 젖어도 남아있는 모래사장처럼 자리를 지킨다.

 

“대신 너는, 율리시즈.”

 

짧은 말이었다. 궁금해하지 않았다. 서로를 재정의하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

 

율리시즈 리는 그 뒤로도 바다에 갔다. 헤일로는 율리시즈 리가 바다에 올 때마다 신기한 걸 많이 보여주었다. 북해가 제각각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파도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돌고래가 각을 맞춰 율리시즈 리를 향해 인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율리시즈 리를 리시, 리시 어느새 친근하게 줄여 부르기도 했다. 제법 애교도 부려댔다. 저를 향해 머리를 부려대었고 예뻐 보이려고 노력을 하는 듯했다. ⋯정체가 뭐야. 율리시즈 리가 무겁게 묻자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가 가볍게 답한다. 북해 용왕.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참으로 실알같이 내뱉는다. 율리시즈 리는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가 용왕이든 구원자든 괴물이든, 뭐든 좋았다. 이 세상 유일한 발 붙일 곳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가 일부러 물방울같이 내뱉은 용왕이라는 말에도 율리시즈 리는 동요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듣고 도망치지 않은 인간은 몇 천년만이라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안도한다.

 

“너랑 있으면, 파도가 넘실거리는 기분이 돼.”

 

율리시즈 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내뱉는다. 드물게 감성적이고 답지 않게 뜬구름 잡는 말이었다. 그래?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그 말에 대뜸 율리시즈 리의 목에 두 팔을 감는다. 그러고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최근에 맑고 푸르러진 북해를 배경으로 입을 맞춘다. 어린 첫사랑처럼 가볍고 조심스러운. 그러나 심해보다 극렬한 감정이 일렁이는. 한참을 입만 맞추다가,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머쓱한지 눈길을 피한다. 그러나 올라간 입꼬리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뒤로도 종종 입을 맞추고 손을 겹쳤다. 종종 껴안고 체온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 주영이 생각나지 않아 좋았다. 온전히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 흔들리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그가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종종 율리시즈 리는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를 흑 모래사장 위에 눕히고는 그를 감상하곤 했다. 그러다가 주영을 끌어안듯, 폭 끌어안아 보기도 했다. 주영과 부피감이 다른 몸이 끌어안길 때면 외롭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단 하나로 세상에 남겨지지 않았다. 이 감정은 단둘만의 것이라 좋았다. 그 외에도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입을 맞추는 걸 좋아했다. 조금 체온이 차갑기야 했지마는,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율리시즈 리는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의 차가운 몸도 좋았다. 그야말로, 단일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몸. 이 몸은 주영의 것처럼 바다에 들어가도 축축해지고 불어 터지고 물고기가 뜯어 먹지 않을 것 같았다. 오밀조밀 언어를 만드는 입술을 만졌다. 따라 해봐. 아, 이에 오우. 아이에 오우. 따라 한다. 발음은 그렇게 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해. 나는 너랑만 말할 건데, 배워야 해? 아니. 그럼 됐어. 나는 지금 네가 좋아. 좋다는 건 무슨 말이야?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 모르겠어. 좋다는 건…. 가슴이 너무 벅차서 견딜 수 없다는 뜻이야.

 

“그럼 난, 너를 좋아하나 봐.”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노을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상하게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와 키스하면 갈증이 지지 않았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종종 바다 얘기를 했다. 북해 가장 가운데 사는 고등어 댁이 아이를 자라가 토끼랑 싸워서 중간에 껴서 달래고 있다는 등. 터무니없지만 재미없는 것은 아니라 그냥 뒀다. 말하고 싶은 게 많았는지 이것저것 재잘거리기를 좋아했다. 바다 앞에 앉아 그의 머리를 쓸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 소리만 듣고 싶어졌다. 그와 입을 맞추면 허기가 사라지고 갈증이 사라졌다. 그는 정말로 저를 위해 만들어진 그 무언가, 같았다.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만. 바다에 이대로 매몰되어, 바다에…. 바다에. 문득 저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주영의 이야기를 하고, 마르는 이 푸른 지구의 이야기를 하고 지상의 이야기를 했다. 지상은 날마다 제물을 바치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거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율리시즈 리의 이야기는 좋아했지만 지상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 사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고, 율리시즈 리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율리시즈 리도 사람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주영을 죽인 사람들이 싫었다.

 

“꽃을 받아본 적이 있어?”

 

흑모래사장에 누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율리시즈가 문득 묻는다.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꽃은 들어봤어. 지상의 것. 바다에는 꽃이 피지 않으니까.

 

“그럼, 이번 기회에 받아봐.”

 

잠시 내륙에 갔다 올게. 널 위한 꽃을 준비하러 갈게. 이곳에는 아쉽게도 갈대만이 전부였다. 율리시즈 리는 내륙으로 향한다. 꽃을 사야 했다. 생전 꽃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남성을 위하여. 내륙으로 향하는 길은 편안했다. 갈대는 스스로 고개를 낮추어 길을 만들어주었고 율리시즈 리는 그 길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간 북해 시의 분위기는 사무 달라져 있었다. 모두가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 어딘가 메마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습한 공기가 멀리서부터 느껴져 왔다. 이 도시에서 습한 공기란 있을 수 없었다. 언제나 비가 오지 않아 메마름만이 가득해야 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빼곡한 고층 빌딩 끊임없는 매연 빽빽한 사람들은 가득했지만 어딘가 정상을 넘어선 축축함이 느껴졌다. 축축했다. 이 도시는 바다에 잠긴 것처럼.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 문제 없다는 양 돌아다녔다. 그것이 이상하고 거리낌 없어서, 율리시즈는 다시 금방 바다로 돌아가기로 했다. 율리시즈를 돌아보는 사람들, 스치는 옷깃, 행방불명됐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봐 같은. 들려오는 목소리들. 그런 것들을 일체 신경 쓰지 않고 율리시즈는 가장 가까운 꽃집으로 간다. 중간중간 어제도, 그제도 비가 내렸대! 같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주영은…. 주영은, 어째서 희생되었는가. 마지막 제물이었는가.

 

제대로 정신 차리고 곳곳을 보니 주영의 사진이 층별로 걸려있다. 주영을 향한 추모곡도 울리는 듯하다. 주영은 마지막 제물이자 어느새 영웅이 된 것이다. 율리시즈는, 제영은 이런 사태를 원한 적이 없다. 주영은 이런 광고 선전용 인간이 아니다. 소중히 가꿔온, 그런 사랑받을만한 존재였는데. 재빨리 바다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율리시즈는 가까운 꽃집에서 꽃을 있는 돈 전부를 털어 몇 다발이곤 사고는 바다로 광인처럼 달려갔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가 기다릴, 쪽빛 바다.

 

머리 숙여 인사하는 갈대들을 헤치자 저 멀리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율리시즈는 마음을 천천히 진정시키고는 꽃을 건넨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동그래진 눈으로 율리시즈를 한창 바라보더니, 율리시즈를 두 팔로 부드럽게 껴안고 토닥인다. 이 북해 유일한 발 디딜 곳. 홀로 남은 나의 안식처. 꽃을 서툴게 엮어 화관을 만들어 씌워주니, 예쁘냐고 묻는다. 응, 예뻐. 최고로 좋아. 좋아? 응. 좋아. 좋아서 예쁘고 예뻐서 좋아. 화관을 쓴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머리를 모으고 손을 곰지락거렸다. 마침내 내뱉은 말은,

 

“내 본모습을 보여줄게.”

“또 뭔 소리래.”

 

고등어 댁이 아이를 낳았다든지 자라랑 토끼 싸움을 중재했다느니 하는 헛소리로 치부하려 했다.

 

“눈을 감고, 숨을 집중해.”

“⋯⋯”

“내 숨에 네 숨을 맞추면, 보일 거야.”

 

인간보다 조금 느리게 뛰는 호흡, 그 호흡에 천천히 숨을 맞추고 하나, 두울. 천천히 숨을 내뱉고 내쉬고 두 눈을 감고 눈을 떴을 때는. 푸르른 바다 한가운데, 숨이 쉬어졌다. 아가미가 돋지 않았음에도…. 그리고 마침내 바다를 활보하는 것은. 검고 빨간, 용. 북해의 곳곳의 그려진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양의 신.

 

“너, 주영을….”

“그런 게 중요해? 너는 나를 정의하고, 나는 너를 정의했잖아….”

“똑바로 말해. 주영을 어떻게 한 거야?”

“우리가 겪은 바다를 생각해.”

“⋯헤일로 너, 혹시 용이야?”

 

잠시의 침묵. 폭발하는 감정. 그는 알고도 모른 체한 것인가? 주영을 듣고도 내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고서도 뻔뻔하게 입을 맞추고 나와 감정을 나누고 나의 안식처가 되어 모든 것을 앗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너희도 내 곳을 망가트리고 내 아이들을 먹었잖아.”

 

용은 변명할 말을 찾았다.

 

“필요 이상으로 들고 가서 날 것으로 씹어먹고 구워 먹고 내다 팔았으면서. 숨겨진 이곳을 기어코 찾아내 모래를 쏟아붓고 바다를 메우고 이 푸르른 물을 육지로 만들었으면서.”

 

용은 침체된 한쪽의 검은 눈을 내리깐다. 심해 깊숙이 산다는 용의 다른 쪽 눈에서는 심해에서는 타오를 수 없는 불꽃이 일렁인다. 외꺼풀이 올라가자 비로소 뱀 닮은 뾰족한 세로 동공 두 쪽이 드러났다. 한쪽 눈은 빨갰고, 한쪽 눈은 검었다. 바다 깨로 사라지는 노을, 바다의 깊은 심해. 바다를 그대로 담았다. 율리시즈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인간됨이 없었다. 그에게는. 마치 그를 처음 봤을 때처럼. 생선을 아이들로 부르는 뱀눈에는 감정만이 살아있었다. 인간 된 지성은 없었다. 용은 단순히 인간을 낮보듯이, 평범한 인간을 보듯이 제영을 마주한다.

 

“염치없이…. 비를 내리래.”

 

“내 아이들이 불쌍해서 달에 하나를 받았어.”

 

그게 죄야? 아는 것이 없기에 순수한 악이 묻는다. 아니다, 아는 것이 없는 것이라 저치야말로 지독히 인간적인 걸지도 모른다.

 

인간됨이 없는 것은 어쩌면 자신일지도 모른다. 자신이고, 북해의 사람들이고, 인간이 인간을 바치던 사람들이고, 나아가 인간일지도 모른다. 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절망. 붕괴는 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율리시즈 리는 붕괴하기 싫어했다. 이 또한 인간의 본성.

 

“네가 싫어. 헤일로.”

 

용의 눈이 끔뻑이더니…. 그것은 곧. 마치 인간도 아니면서 상처받은 얼굴로 서서히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니 다시 북해 내륙의 한 가운데였고 파도는 잠잠했다. 이후 약속된 달에 하루 보름달 차는 날에도 여전히 푸른빛 내뿜으며 바다는 전례 없이 산턱에 걸린 달무리처럼 잔잔하여 제물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

 

비는 이후로 적재 적시에 올바르게 내렸다. 온 땅은 기름지고 풍요로운 초록빛으로 가득 찼고 갈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의 혈액을 빼 먹은 이야기는 기담 취급받다가 헛소리 되어 사라졌다. 모든 인간들은 제물로 희생되는 이 없어 기뻐했고 모두 환희에 차 기름진 땅, 두려움 없는 세상, 올바른 공기를 찬양하며 아무도 슬퍼하는 이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율리시즈였다. 모두가 기뻐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저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다시 온 땅이 메말랐으면 그래서 제물로 제가 내려간다면 하는 마음이 새어 나와 메마른 가슴을 축축이 적시는 것이었다. 문득 든 생각이 정도에서 어긋남을 알고 바른 선로를 찾아가려 하다가도 그 빨갛고 검은 바다를 담은 눈동자. 세로로 찢어지는 사악한 동공이 흔들리는 모양이 망막에 새겨져 모든 것을 흐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장난 눈을 감으면 귀가 말썽이었다.

 

너는 누구야.

 

대신, 너는 율리시즈.

 

너랑 있으면 바다가 넘실거리는 기분이 돼. 그럼 난, 너를 좋아하나 봐

그리고 끝은,

 

 

네가 싫어.

 

진정한 부재는 비로소 대상이 없어질 때야 드러난다. 그러기에 무서운 것이다. 한 달에 하루도 빠짐없이 북해의 끝에 갔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를 처음 만난 장소에서 앉아도 있어 보고 바다를 휘저어보기도 하고 눈물방울만 똑똑 흘려도 보았는데 여전히 혼자였다. 헤일로! 소리 높여 불러보아도 물보라 하나 일지 않고,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 소리 높여 불러보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때에 사람을 수렁에 빠트리고 올라갈 구심점이람 전부 없애트린 것이 부재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다.

 

사랑했나봐. 사랑, 내가…. 걔랑.

 

*

 

물고기가 되어도 좋아?

 

어느 순간 물에 닿을 때마다 물들은 그렇게 속삭였다. 지독하게도 속삭였다. 폐로 호흡하지 않아도 좋아? 더 이상 육지를 두 발로 걷지 않아도 좋아? 평생을 아무 생각 없이 유영해도 좋아? 뇌가 없어져도 좋아? 피식자가 되어도 좋아? 물컹이는 몸으로 한평생을 살아가도 좋아? 부드러운 피부가 아닌 딱딱한 비늘로 온 생을 살아가도 좋아? 너는 인간이 아니어도 좋아? 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끊임없이 제영을 괴롭혔다. 물에 닿으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귀로 들려오는 것인지 피부로 흡수되는 소리인지 뼈에서 울리는 것인지는 몰랐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뼈로 소리가 들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물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에서는 유구한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뭍에 올라온 후 몇 날 몇 달을 사랑에 앓다가 조금 벗어나고 일상을 다시 살아가려는 찰나에 첫 속삭임이 들려왔다. 물고기가 되어도 좋아? 그 물음은 꼭, 바다로 돌아오라는 것 같았다. 너도 같은 부재를 느끼고 있어? 헤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방울로 네 감정을 전할 만큼…. 나를 그리워하니?

 

그러나 물에 대고 물어도 답은 없다. 끊임없이 물고기가 되어도 좋아? 하는 물음만이 돌아올 뿐이다. 율리시즈 리는 그것에 답변하지 못했다. 않은 건지 못한 건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저,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싶었다. 율리시즈 리는. 이 뇌로 아직 주영을 생각하고 싶었고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를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두 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르며 심해어처럼 오랜 시간 잠들어있고 싶기도 했다. 제영은 율리시즈 리는 더 이상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 온 세상이 축축한 바다에 잠긴 것 같았다. 이 메마른 이십일 세기 전자통신 가득한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 없는 메마른 세상이 물에 젖어 있는 것만 같아 제대로 된 생활이 되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었고 그저 죽고 싶었다.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결심한 것은 마침내 창개한 여름 더더욱 메마르는 것. 물 한 방울도 입에도 몸에도 대지 않고 살아가는 것. 더 이상 물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봄이었는데 어느덧 여름이었다. 여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왔다. 언제나 제 이름을 외치며 찾아오던 계절은 드물게 조용히 찾아왔다. 작열하는 태양, 숨 쉴 곳이 없으면 너를 부르마.

 

물을 끊은 첫 번째 날이었다. 버틸 만하였다. 몸이 찝찝하긴 하였지마는 그것은 별것이 아니었다. 매일 매일 미치게 귀 안을 맴돌던 물소리. 물소리가 없다면 살 수 있었다. 물소리가 없다면 살 수 없었다. 물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 익숙하지 않으면서 외로웠다. 그새 간악하게 물든 것이 꼭 헤일로의 색이 다른 두 눈을 떠올리게 했다. 첫날은 눈이 떠올랐다. 빨갛고 검은 두 눈. 동그랗게 굴려, 알알이 가지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소중히 품에 안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너의 눈.

 

두번째 날에는 몸이 간지러웠다. 생리적인 가려움이었다. 씻지 못하는 불쾌함은 율리시즈 리를 끊임없이 뒤덮었다. 슬슬 목이 말라오기도 했다. 목이 말랐다. 물이 고팠다. 무엇이든 액체를 마 고 싶어 하셨지만 아직 참을 수가 있었다. 점점 말라오는 목을 애써 외면하고 한 자리에 가만있자면 주영과 함께하던 어느 때가 문득 떠올랐다. 주영이 물을 고파할 때면 율리시즈 리는 조직원들의 피를 물이라고 속여 입에 넣어주었다. 주영은 물이 빨간색인지 알고 죽었다. 그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영은 끝까지 행복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죽었음에도, 지금도 바깥에 눈을 돌리면 곳곳에는 주영의 동상이 주영의 사진이 가득했다. 이 새하얀 얼굴, 부드럽게 올라온 홍조, 동그란 두 바둑알 같이 검은 눈, 살짝 납작해서 귀여운 코를 가진 소중한 주영이. 주영은 살아생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데 어째서 살아있지 않은 걸까? 목마르면서, 물의 부재와 함께 주영의 부재를 생각했다. 소중한 것들은 어째서 재빨리 떠나가기만 하는지. 율리시즈 리는 천 천히 제 삶을 의문했다. 그의 검디검은 비늘을 떠올렸다. 검고 빛났던 비늘, 찬란하게 반짝이던 그 딱딱하고 미끄러워 보이던 온 세상이 찬탄할만한 여름비처럼 반가운. 둘째 날에는 비늘을 생각하니 온통 갈증이 가셨다.

 

물을 마셔야 했다. 세 번째 날에는.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은 세 번째 날. 정말로 물 한 방울이 간절했다. 식수가 있지만 마시지 않는 것은 꼭 지구가 메마르기 시작한 일주일을 떠오르게 했다. 조직원 하나가 제 목을 자르자 솟구치던 피를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함께 나눠 먹던 날, 그날 모두는 죄에 울었지만- 만족했었다. 그것은 죄악감을 동반한 갈망이자 두려움이었다. 생존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었고 다음은 누가 목을 자를지에 대한 두려움이자, 동료의 피가 마르기 전에 허겁지겁 목을 축여야 했던 것에 대한 죄악감이었다. 끝이 없는 두려움 속에서 조직은 점점 누군가는 도망가고 누군가는 목을 자르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티며 파훼되었다. 율리시즈 리는 갈증 속에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문득 꽃을 생각했다. 헤일로에게 전해주었던 샛노랬던 메리골드 꽃다발. 그는 꽃말도 모르면서 꽃을 받고 행복해하며, 물었다. 예쁘냐고, 대뜸 묻더니 저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용은 꽃을 좋아했다. 바닷물에서는 살 수 없는 것만을 좋아했다.

 

네 번째 날에는 모든 것이 가렵고 갈증이 났다. 용의 모든 것이 생각이 났다. 용이 인간 된 모습. 용이 했던 말들. 용의 모든 것. 용이 살아온 세월이 문득 궁금해졌다. 용은 어찌하여 단숨에 저를 사랑했으며 그 외로움의 깊이는 바다보다 깊을지에 대해서도. 용은 사랑을 그저 고파하는 것 같았다. 그게 자신이어서 다행이었다. 용은 오랜 시간 살아왔다고 했다. 고등어 댁과 자라와 토끼의 싸움이 이야기할 것이 전부인 삶을 율리시즈 리는 제영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용은, 외로움에 잠식된 이였다. 외로움은 갈증과도 같았다. 갈증은 외로움과도 같았다. 용은 몇천 년을 견뎌온 이 갈증을 고작 며칠도 못 견디는 자신이 웃기면서도 웃기지 않았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날. 끝없이 불행하기만 했던 날들 속에서 이상하게 율리시즈 리는 죽지 않았다. 인간은 삼일 이상 물을 못 마시면 죽는다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끊임없이 갈증은 났지만 메마르지도 않았다. 몸무게도 같았다. 마침내 일곱 번째 날의 새벽이 밝을 때, 율리시즈 리는 제영은 씻지 않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갈증에도 익숙해졌음에도 문득 바다로 달려 나갔다. 처음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와 이름을 정의했던 북해의 끝으로 한없이 단일하게 영구적으로 번뇌 없이 억겁으로 달려 나갔다. 그 구르는 발걸음은 재빨랐고 굳건했다. 빽빽한 나무 같은 사람들을 거쳐, 끊임없이 늘어선 빌딩들 새로, 어지럽게 얽힌 자동차들 사이를 나서서 광야를 한참 달리니 마침내 북해의 끝. 땀이 송골송골 났다. 일주일간 먹은 액체도 없으면서.

 

 

“헤일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네 곁이라면.

 

“인간이 아니어도 좋아.”

 

인간의 본성 같은 게 중요해?

그러자, 바다가 울렁인다. 거짓말처럼 평평히 반듯하기만 했던 바다가 미친 듯이 위아래로 덜컹거린다. 파동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파도의 움직임에 삐이이, 거리는 시끄러운 경보가 미친 듯이 울리는 가운데 파도 소리 물방울 포말 하얀 물거품 바다 그 모든 것들이 갈라지고 그 새로, 쪽빛보다 파란 물보라 사이로 용 하나 걸어 나온다. 남자는 어쩐지 더 마른 체형으로 모든 감정을 띠고 있는 얼굴은 꼭 무색이었다. 두 가지 색의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엉켜있고 마침내 눈을 뜨자 그곳에는 색이 다른 두 눈이. 꼭 이가 저주받은 북해에서 탄생한 새로운 신인지 구원자인지. 어쩌면, 율리시즈 리를 이 갈증에서 해방시켜줄. 남자는 물보라에서 걸어 나오더니, 아무 말 않았고 제영 역시 아무 말 않았다. 시선이 공중에서 소란스럽게 얽혔지만, 머릿속은 각자의 말들로 시끄러웠지만 구태여 티 내지 않았다.

 

“사랑해, 율리시즈.”

 

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조금 처량해진 얼굴로, 가련하게. 말라가는 인간들보다 더 마른 채로, 한없이 어려운 얼굴로 감히 건넨 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모든 바다에 묻어뒀다가 겨우겨우 꺼 낸 것처럼 사랑해라는 말은 깊었다. 율리시즈 리는 무슨 말을 꺼낼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민하다가….

 

“얼굴이 상했어.”

 

율리시즈 리는 그새 마른 헤일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자신의 얼굴을 조금씩 더듬었다. 가냘파진 얼굴을 마른 손으로 뒤덮는 모습이 조금은 웃기고 많이는 처량해서 율리시즈 리는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의 목에 두 팔을 감는다. 그러고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최근에 맑고 푸르러진 북해를 배경으로 입을 맞춘다. 무거운 사랑처럼 깊고 진한. 심해보다 극렬한 감정이 일렁이는. 한참을 입만 맞추다가,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율리시즈 리의 검은색 두 눈을 곧게 마주한다. 검은색 눈, 바다, 검정, 바다의 검정이 온통 그의 눈에 집중되는 것 같았다. 그를 사랑해버리고 만 것이다. 용은 자신의 검정을 그에게 온통 양도하고 싶을 정도로, 그를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순간 율리시즈 리가 말한다.

 

사랑해, 나도.

 

율리시즈 리를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끌어안았다. 물에 들어가도 축축해지지 않고 불어 터지지 않고 물고기가 뜯어먹지 않을 몸으로 몸이 천천히 기조부터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뼈가 흐물흐물해지고 가늘어지고 뇌가 축소되고 사랑스러운 피부에서 미끄러운 비늘이 돋아나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 느껴짐에도 인간됨이 중요해? 나는 네 곁이면 돼. 나는 네가 더 중요해. 할 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사랑은 아니었다. 단지 외로움, 외로움과 갈증이 이끌어낸 결과였으나 이 또한 사랑이라 할 만큼 온 지구는 사랑에 메말라 있었다. 사랑해, 나도. 바다는 온 지구에 눈물을 흘려내었고 인간은 이토록 큰 비에 불평하였다. 최근 들어 지구가 축축해지는 것 같다고 비를 이토록 바랄 때는 언제고 인간은 복에 겨워 비를 불평하면서 비를 맞으며 말을 했다.

 

*

 

인간이 아닌 몸으로 바다를 유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언제나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의 곁에서 지느러미를 살랑거리며 꼬리를 움직이며 바다 물살을 갈랐다. 천천히 노곤한 파도 깃을 건드리고 있다 보면 며칠 전 본 주영의 뼈다귀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물속에서 비추는 부서지는 햇빛을 볼 때면 문득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인간 된 모습으로 있을 때도 있었고 용된 모습으로 있을 때도 있었다. 용된 모습도 이제는 사랑했다. 검고 매끈한 그 몸, 긴 수염, 인간답지 않은 그 눈. 그 눈을 볼 때면 사랑에 빠졌다. 빨갛고 검은 눈은 노을과 심해를 그대로 담은 듯했다. 이토록 짙은 사랑은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다시 없을 것 같았다. 두 팔을 마음껏 휘두르지 못해도 두 다리로 육지를 걷지 못해도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바닷물을 마음껏 마시고 플랑크톤을 마시며 율리시즈일 리는 물고기가 되었다. 종종 헤일로가 원할 때는 인간이 되기도 했다. 인간인지 물고기인지도 모를 때, 서로와 함께 헤엄치는 것.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다 위는 끊임없이 시끄러웠다. 인간이 달에 하나씩 떠내려와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외치다가 잠수 되어 물고기들의 식량이 되는 것을 보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끊임없이 춤을 추고 다시 구시대의 방식으로 돌아가 굿을 하며 바다에 배를 띄우고 인간을 달에 하나, 이 주에 하나, 일주일에 하나, 하루에 하나 던질 때까지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와 율리시즈 리는 바다를 유영했다. 인간을 먹지는 않았다. 인간을 먹는 건 바다에서도 최하위에 속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품종들의일이었다. 인간은 오염되었고 죄가 많았다. 모두 각자가 각자의 동족이 동족의 액체를 먹은 탓에 끔찍한 맛을 하고 있다고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말해주었다.

 

왜인지 모르는 공허감, 물을 헤엄치다 보면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의 끊임없는 공허감과 마주쳤다. 바다는 물밖에 없었다. 오로지 물, 물, 물. 헤일로는 짙은 외로움을 종종 말해주었다. 너를 만나서 나는 행복해 율리시즈 너는 나의 유일한 존재야 단일함 외로움이야 네가 없을 때 정말 외로웠어 나는 죽고 싶은게 뭔지 처음 알았어 그동안 모든 감정이 거짓말이란걸 알았어 고마워, 고맙지 않아 네가 나를 찾아와줘서 기뻐.

 

나는 너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그런 기조를 띠고 있었으니까.”

 

마침내 도망온 인간이라곤 티끌도 찾아볼 수 없는 바다에 죽은 인간이 가득해질수록, 관계는 융성해졌다.

 

*

 

물고기가 된 지 한 달여의 일이었다. 인간들은 바닷물이라도 가리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모든 물이 메마른 탓이다. 모든 지도의 수도가 메마른 모양이다. 그러나 바닷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는 속성을 지닌 물이다. 수없는 인간은 좀비 떼처럼 바다에 달려와 물을 미친 듯이 마셔댔다. 바닷물의 수위가 낮아질 정도였다. 물고기들은 말라 죽어가고 모래사장 위로 내던져진 물고기들은 인간들에게 구워 먹히거나 생으로 물어뜯겼다. 지성을 잃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은 무엇이든 마실 수 있는 것이라면 마셨다. 자유롭게 어디든 유영하는 물고기보다 하등한 생명체 같았다.

 

이상하게 율리시즈 리는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영을 심볼시킨 순간부터인지 주영을 바친 순간부터인지는 몰랐다. 인류애라는 것이 말소되었고 그 자리를 오로지 바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가 채운 기분이었다. 인간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메말라 죽어가다가 바닷물을 마실 지경에 이르러도 가련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었어도, 그들이 자신 같지는 않았다. 한때는 인간이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인간에 대한 갈망은 지속해서 율리시즈 리를 뒤덮었다.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를 두 팔로 끌어안고 호흡을 나누며 바닷속에서 멸망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갈증을 헤일로를 갈구하며 아프고 싶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되어서 바닷속에서 이 끝없는 공허를 두 다리로 감싸 안고 유영하고 싶었다. 한 생을 끝없이 바다 속에서만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문득 물었다.

 

나는 너만의 인간이 될게. 너는 나만의 신이 되어줄래?

헤일로 노바 마그네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 말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율리시즈 리의 몸을 껴안았다. 바다에서 인간은 숨을 쉬지 못한다. 육지로 올라갔다. 육지에서 살지 못하는 용은.

 

동시에 지구의 모든 물이 다시 살아났으나, 인간들은 마지막 액체를 육체에서 쥐어 짜내어 동족 이 동족을 먹고 연인 어미 자식 친구 구분 없이 서로를 헤매었으며 마침내 메마른 땅에서 다시 신의 자비를 찾았으나 이 지구의 신은 이미 한 인간의 신이 된 지 오래였다. 바다신은 다섯 개의 바다를 한 인간에게 온통 쏟았으니. 이제는 인간을 향한 축복은 없었다. 그리하여 한 인간과 신은,

 

다시, 바다가 되었다. 바다로, 다시.

 

 

온 인간을 한 세기를 멸망시키고 나서야 한 사랑이 증명되었다.

 

*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사랑받는 것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었으나 그 누구도 바다에게 감사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라 여기어 사랑을 알되 모르고 평생을 살아갔다. 끝없는 공허, 그것은 언제나와 같은 것이라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인간을 받은 것은 외로움 때문이라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으나 물에 들어온 인간은 족족 죽었고 바다는 죽은 인간을 가만히 오래도록 품었다. 진짜 인간과 대화하기는 두려웠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산 인간이 나타나 바다의 이름을 정의하고 예쁘다 하고 사랑을 받는 법을 알려주고 부재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리움이 무엇인지 바다에게 각인시키니, 바다는 미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자비는 없었고 오로지 한 인간에게 집중된 온 세상을 향한 사랑. 바다는 끊임없이 고찰하고 생각하다가 인간을 다시 만나, 인간을 한 인간을 위해 온 세상을 바치어 결혼하니 이것은 순수한 사랑이 아닐 수가 없었다 생각했다. 다시 바다가 되었다. 진정한 바다가 되었다.

 

바다는 인간이 있기에 바다였고 인간은 바다가 있기에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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