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피에타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게 뭔지 알아?
⋯심장?
아니지, 아니야.
그런 걸 묻는 이유가, 뭔데?
영혼이야.
⋯ 왜 갑자기 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원래 신체가 모든 기능을 멈추기도 전에, 영혼이 죽는 법이야.
⋯⋯.
알아두면 좋잖아?
여, 영혼의 불멸을 믿는 편은 아닌데⋯, ⋯ 뭐. 그래.
그 대화는 두 사람이 방에서 함께 영화를 본 날 이루어졌다. 무명 시나리오 라이터와 무명 감독, 무명 배우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영화는 몇몇 씨네필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너무나도 마니악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본 날은, 동시에 시즈코 쇼토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날과 같은 때였다.
물론 새벽에 사람이 돌아다니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그는 어딘가 다녀올 때만큼은 하나비시에게 언질 정도는 해 주는 편에 속했다. 상대가 그것을 원하지 않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하나비시 요시히라는 이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던 참이었다. 시즈코 쇼토라는 인간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는 당최 알 방도가 없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두 사람의 관계는 모순이나 비약으로 가득했으니까. 다만 하나비시는 생각한다. 자신이 아무리 회피를 거듭하는 인간일지언정, 이런 식으로 관계를 끝내는 것은 본인이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다고.
욕실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눈이 떠져서는, 시즈코 쇼토가 방에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새벽 내내 그를 찾아 돌아다녔다. 원래라면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했을 법도 한데 사람의 감이라는 게 어떨 때는 무시하기가 정말 힘든 것이었다. 그 기묘한 감이라는 것 때문에 하나비시는 슬리퍼를 양쪽 다른 색으로 신고서 시즈코가 다닐 법한 동선을 쭉 다녔다. 사라진 사람을 찾는 자는, 적어도 이 관계의 종지부가 어느 한쪽의 실망하거나 질렸다는 듯한 낯일 줄로만 알았으므로, 결국 상대를 찾는 것에 실패했을 때에는 묘한 탈력감과 절망이 뒤섞인 채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다시 누웠을 때에는 아침이 된다면 시즈코 쇼토가 돌아올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과 함께였다. 밖에서는 해가 밝아오고 있어서, 그는 암막 커튼을 단단히 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무의식 속에서, 샤워기로부터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못내 거슬려 눈을 뜨면 암막 커튼이 창문을 가리고 있어 시간을 어림짐작할 수 없었다. 고요한 사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 안. 텔레비전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시즈코 쇼토. 그는 어제-아마도, 어제일 것이다-같이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침대에 앉아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쓰는 이에게, 어떠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게 뭔지 알아?
하나비시는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마찬가지로 한 의문을 입가에 올린다.
뭔가 이상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반쯤 비어 있는 팝콘 그릇, 영화를 보던 남자의 옷차림, 자신이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을 제하고서는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은 풍경. 마치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 시즈코는 사라진 적조차 없다는 듯, 평온한 낯으로 그에게 어제-어제가 맞을까-물었던 것을 똑같이 묻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잖아?
시즈코의 말을, 하나비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바뀌지 않는 게 좋다고?
좋은 거랑 싫지 않은 건 달라, 하나비시.
⋯모르겠어.
알지 않아도 돼.
과열된 DVD롬이 잡음을 냈다.
저 DVD는 언제까지 넣어 둘 거야?
크레딧은 이미 전부 지나간 지 오래였다. 콜라 대신에 라떼를 마시던 시즈코의 잔은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려 커피와 물의 층이 분리되어 보였다.
모르겠어.
나도 널 모르겠어⋯.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그냥 앉아서 영화만 보고 있었는데.
천연덕스러운 웃음소리.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하나비시 요시히라는 결국 다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는다. 같은 전개대로라면 분명 자신은 새벽에 다시 깰 것이다. 시즈코 쇼토는 사라질 것이다. 욕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그에게는 마치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 내는 소리처럼 느껴져서, 그는 누운 채로 시즈코에게 욕실의 물을 잠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가 들어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것을 반복한 지 어느덧 다섯 번째였다. 이제 하나비시는 더 이상 새벽에 그를 찾으러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시즈코는 질리지도 않는다는 듯 새벽마다 어딘가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그저 시즈코의 환상일 것이라고, 하나비시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생각했다. 진짜 시즈코 쇼토는 이젠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휘말린 자신만이 가짜 시즈코 쇼토를 보고 있는 것일 거라고. 그게 그의 가설이자 현실이 되어버렸다.
몇 번째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날, 하나비시가 영화-이제는 지긋지긋하다-를 보던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다.
욕실의 문을 잠가버려야겠어.
시즈코가 어리둥절한 낯으로 묻는다.
갑자기? 왜?
저, 저 샤워기 때문이야, 전부 다.
그러니까, 뭐가.
네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네가 떠난 것도, 이 하루가 반복되는 것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걸.
⋯모르겠다고? 그럼 내가 말할게.
너 지금 흥분했어.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죽는 건 영혼이야.
내가 말했던 적이 있었나?
아, 무튼 잠가버릴 거야.
네가 그러고 싶다면야.
너, 왜 그래?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두 번째 묻고 있는데.
묻는 쪽의 남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비록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한들, 둘은 꽤, 어찌저찌 잘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찌저찌라는 대목이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이 문제였을까. 과열된 DVD롬이 열리는 일은 없었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샤워기의 물이 떨어지는 소리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시즈코.
하나비시.
그 호명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꼴이었다는 듯, 하나비시 요시히라가 마침내 손을 뻗어서 DVD롬의 버튼을 누른다. 안에서는 더 이상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롬이 열린 동시에 후끈한 열기가 밀려온다.
왜 자꾸 떠나려 해? 여기가 집인데.¹
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이었던 영화의 화면이 점멸한다. 그리고, 침묵.
W. kittoaida
1) 티탄, 쥘리아 뒤쿠르노 (2021)